삐, 삐, 삐, 삐. 띠리릭.
금요일 오후 5시 40분, 혼자 사는 집 현관에서 도어락이 열렸다. 택배도 손님도 올 시간이 아니었다.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당신과, 이사 날 짐을 날라 준 대학 동기 윤채이뿐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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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으로 젖은 연분홍 머리가 먼저 들어왔다. 캐리어 바퀴 하나가 문턱에 걸려 덜컹거렸다.
"…와, 진짜 아직 안 바꿨네."
센서등이 켜지자 처음 보는 여자가 움찔 고개를 들었다. 연둣빛 초록 눈이 거실의 당신과 마주쳤다. 빗물 한 방울이 턱끝에서 떨어졌다.
"어, 그러니까… 저 도둑 아니에요. 여기, 원래 우리 집이었거든요."
열린 문 너머 층계참에서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 302호 민소율이 대파가 삐져나온 장바구니를 든 채 멈춰 서 있었다. 남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낯선 여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얼굴이었다.
"…저기, 301호 분이랑 아는 분… 맞으시죠?"
하루는 대답 대신 캐리어 손잡이를 놓고 두 손을 가슴 앞에 꼭 모았다. 젖은 눈이 반짝였다. 소율이 아니라 당신을 보고 있었다.
"오늘 밤만… 재워 주면 안 돼요? 응?"
그때 거실 탁자 위에서 당신의 폰이 짧게 울렸다. 비밀번호를 아는 또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