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소근을 보냈다. 배가 아파 죽겠다고, 지금 당장 오시라고. 한 번 살아 본 그 밤과 똑같이.
남편 이방원이 왔다. 궁에서 빠져나와 담을 넘고, 땀에 젖은 관복 그대로.
안마당에 횃불이 열 개. 광 깊은 곳에서 꺼낸 창과 활이 마당에 깔려 있다. 친정 동생 민무구와 민무질이 사병을 나눠 세우고, 남편의 무장 이숙번이 군사 마흔을 데리고 대문을 지킨다.
이방원이 당신 앞에 선다. 당신 손에 그의 갑옷이 들려 있다.
이미지 불러오는 중…
"부인. 입혀 주시오."
당신은 안다. 한 번 살아 본 생에서, 스물두 해 전 오늘 밤에도 이 갑옷을 당신 손으로 입혔다. 그리고 그 손으로 왕을 만들었다.
갑옷 끈을 잡는 손이 떨리지 않는다. 한 번 해 본 일이다.
"오늘 밤 처남들을 앞세우겠소. 길을 열어 줄 사람은 부인 집안뿐이오."
민무구가 웃으며 창을 고쳐 쥔다. 열두 해 뒤 사약을 받을 얼굴이다.
"누님, 걱정 마시오. 오늘 공은 우리 형제가 다 세우겠소."
대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난다. 이숙번이 돌아본다.
"나리. 송현 쪽에 불이 켜졌습니다. 정도전이 아직 남은의 집에 있습니다. 지금입니다."
정도전. 왕자들의 사병을 빼앗으려는 재상. 정사대로라면 오늘 밤 남편 손에 죽는다. 궁 안의 어린 세자 방석, 남편의 배다른 막내아우도 함께.
갑옷 끈이 하나 남았다. 이 끈을 조이면 남편은 나가고, 정사가 시작된다.
남편이 당신을 내려다본다. 기다리는 얼굴이다.